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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_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9251832451&code=116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신영복의 <강의>-왜, 21세기에도 동양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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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질문을 여러 사유의 경로를 훑어가면서 담담하게 적은 것이다. 이를 서문 삼아 다시 읽어보니 금세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두툼한 책의 도처에 있어서, 늘 다시 보게 되는 책이 신영복의 <강의>다. 

2013년 2월 초 겨울.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 나는 같은 학교의 어느 교수와 함께 선생님을 모시고 목동의 댁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한 달쯤 전에 박근혜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곧 취임을 앞둔 때였다. 굳이 안 해도 될 얘기라면 일부러 하지는 않는다는 생활관습을 지닌 두 분이 뒷좌석에 동승했기 때문에 차 안은 적조한 기운마저 들 정도였다. 목동에 접어들면서 허튼 기침소리처럼 한마디 여쭤보았다. 

“선생님. 저어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기분이 좀 어떠세요.”

선생님은 별말 없이 있으시다가 내 차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무렵, 잊었다는 듯이 나지막이 한마디하셨다. 

“…치가 떨려요. 치가 떨려서 밤에 잠이 안 오지.” 

그런 분노의 말씀은 듣기 어려운 것이었다. 짧지 않은 기간이나마 대학의 실무로 인하여 선생님을 가까이 뵌 지 몇 해 되었지만 그런 분노의 언어를 들어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고 또한 마지막이었다. 1968년에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20년 2개월 동안 형무소에서 젊은 날을 다 보낸 선생님으로서는 다시는 그 시절의 상흔이 남아있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또한 불가하지 않겠느냐 하는 마지막 기대를 가지셨으나, 기이한 권력의 탄생 앞에서 선생님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지레짐작을 했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15년 열린 신간 「담론」 설명회에서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15년 열린 신간 「담론」 설명회에서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유작처럼 남아있는 글씨 ‘독락당’ 

그로부터 2년여 흐른 어느 봄날, 나는 선생님께 글씨 한 점을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공적인 일로 글씨의 쓰임새가 있거나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경우라면 주문자가 누구든지 정성을 다하여 글씨를 쓰셨다. 세간의 유명한 글귀가 된 ‘처음처럼’, ‘더불어 숲’, ‘함께 맞는 비’ 같이 오랫동안 써오신 글귀도 대개는 한나절 정도 꼬박 쓰셨다. 

그 일이 어지간한 노동에 가까운 것이라서 선생님을 가까이 잘 아는 사람들은 글씨를 청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는데, 나는 그만 부탁을 드리고 만 것이다. 그해 겨울에 선생님은 깊은 병에 드셨고 그로부터 1년여 투병하시다가 2016년 1월에 타계하셨는데, 병중에도 여러 사회단체들의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 공익근무로 힘겹게 붓을 잡고 글씨를 쓰셨지만, 나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히 부탁드린 글씨가 선생님의 유작처럼 남아있다. 어렵게 그런 청을 드리던 그 봄날의 대화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래요, 써드려야지. 정 선생한테는 소홀했구나. 그래요, 생각해둔 글귀라도 있어요?”

“선생님. 독락당(獨樂堂), 이렇게 써주세요. 작업실에 걸어두려구요.”

“독락? 독락이라….” 

선생님은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 선생이 어찌 지내왔는지, 또 어떻게 홀로 공부했는지, 그 이력을 모르진 않아서 무슨 마음으로 써달라고 하는지 짐작은 하겠는데, 글쎄요, 혼자 있으면 안 되는데. 혼자 있는 것을 즐거이 여기면 안 되는데…. 혼자 있으면 안 돼요.” 

그리 말씀은 하셨지만 며칠 후 선생님께서 글씨를 내려주셨다. 하나를 청하였는데 두 점이었다. ‘독락당’이 그 하나요, ‘신독’(愼獨)이 다른 하나다. 홀로 있을 때도 스스로 삼간다는 뜻이다. 선생님께서 편하게 글귀를 엄선하셨더라면 이런 글귀는 선택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신영복 교수의 저서 「강의」의 책표지 사진

신영복 교수의 저서 「강의」의 책표지 사진

뜻을 새겨본다. 독락이라. 경주 안강마을의 옥산서원에 가면 이언적의 유서가 서린 ‘독락당’이라는 별채가 있다. 이때의 ‘독락’은 이언적의 삶이 말해주듯이 세상이 자기 뜻과 맞지 않아 홀로 물러나 앉아 있으나 괘념치 않고 오히려 홀로 있음을 즐길 만하다는 뜻이다.

최진겸이 서재를 짓고 당호를 ‘독락재(獨樂齋)라 하였을 때 스승인 연암 박지원이 ‘독락재기(獨樂齋記)’라는 글로 제자를 일깨운 일도 있다. 연암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독차지하는 일은 커다란 재앙”이라는 고사를 인용한 후 “어떤 망령된 사람이 세상을 향해 시끌벅적하게 ‘나는 마땅히 독락할 수 있다’고 외친다면, 어느 누가 그 말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서재 이름을 독락재(獨樂齋)라고 한다면 더더욱 어리석고 미혹한 행동이 아니겠는가”라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제자에게 일러 가르치기를 다만 “환히 트인 창문 아래 책상 앞에서 고요히 앉아 밤낮으로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이렇게 “독서에 더욱 전념할 수 있도록 해, 그의 독락(獨樂)을 중락(衆樂·더불어 누리는 즐거움)이 되게 하려고 한다. 이것은 그 즐거움을 세상 사람들과 누리고자 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이상은 <조선의 선배, 서재에 들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새겨본다. 신독(愼獨), 신독이라! 

작업실이 너무 어두컴컴하여 선생님의 글씨 하나를 떡하니 붙여놓고 서푼어치 폼이나 재려고 한 일인데, ‘독락당’에서 엄중하게 ‘신독’할 것을 권면한 선생님의 글씨로 인하여 사뭇 두려운 마음까지 들 때가 있다. 

써주신 글씨 ‘독락당’ 세 글자는 소박하다. 삼칸짜리 초가요 고개 숙여 드나드는 우거처럼 보인다. 부엌과 안방과 사랑방 같다. ‘락’은 허튼 동작 없이 겸손하게 앉은 이의 몸가짐처럼 보인다. 반면 ‘신독’은 강건하다. 적지 않은 획수인데 붓이 단 한 번에 결연한 기운으로 넘쳐 흐르면서 전체가 결기에 휩싸여 움직이는 듯하다. 

차마 이를 실천할 만한 의지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글씨를 받은 후에도 나는 음악이나 듣고 책이나 뒤적이며 서푼어치의 ‘독락’만 유희하고 있으니, 어쩌다 두 점의 글씨를 보게 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런 마음으로 며칠 동안 선생님의 책을 펼쳐 다시 읽었다. 마침 여러 교수들이 함께 강의하는 순서의 일환으로 ‘신영복과 옥중문학’이라는 특강을 하게 된 것이 계기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를 비롯한 여러 옥중문학과 더불어 함께 읽으니 책들 사이로 바람이 불고 문장 사이로 결기가 흐른다. <강의>, <담론> 같은 대표작은 물론이려니와 소박하지만 단단한 책 <청구회 추억>은 읽다 보면, 마음 깊이 드리워지는 선생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근본 담론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 

<강의>는 따로 앞머리에 서문이 있지만, 이는 책이 나오게 된 경위와 소감을 짤막하게 쓴 것이고, 본격적인 서문은 ‘1장 서론’이라 할 만하다. 왜 21세기에도 동양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그 복잡한 질문을 여러 사유의 경로를 훑어가면서 담담하게 적은 것이다. 이를 서문 삼아 다시 읽어보니 금세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두툼한 책의 도처에 있어서, 늘 다시 보게 되는 책이 신영복의 <강의>다. 

“21세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미래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에 대한 객관적 전망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소망이 전망의 형식을 띠고 나타난 것입니다. 미래 담론은 대부분이 20세기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저의를 내면에 감추고 있습니다(중략). 고전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어쩌면 오늘날처럼 속도가 요구하는 환경에서 너무나 한가롭고 우원(迂遠)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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